[의학사로 보는 세상] 의학이 발전할수록 질병도 발전한다

조회수 388

현대의학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첨단지식의 총합인 현대의학

 

오늘날 약 두 달이면 의학지식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새로운 지식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의대에서 공부하는 의학지식은 그 학생들이 사회에서 의사로 일하게 되었을 때 쓸모없게 되는 일이 꽤 있다. 

수많은 약이 수시로 등장하고 사라지고 있으며 새로운 치료법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여 지식의 양에 짓눌린 의사들에게 공부를 더 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게다가 새로운 기계까지 수시로 개발되어 신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의사들에게는 의사 역할을 잘하기가 점점 어렵게 되어 가고 있다.


현대의학이 과거에는 손을 쓰지 못하던 중환자들을 살릴 수 있게 된 예는 얼마든지 있다. 20세기 후반에 조금씩 시도되다가 이제는 어느 정도 보편화된 고압산소 치료법은 수년 전 시험을 마친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들이 펜션에 놀러 갔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에 의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 여러 생명을 구한 바 있다(모두 생존하지는 못했으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빈다).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는 못한 채 토착화하고 있는 코로나19는 그 위력이 초기보다 크게 약해졌다. 치명적인 감염병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에게 덜 위험해지는 건 역사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코로나19의 경우 감염력이 아주 강하고 초기에 일부 국가에서는 치명률이 10%에 이를 정도여서 환자에게 적절한 의학적 처치가 이루어지기 전에 환자가 급속히 발생함으로써 의료진까지 피해를 입는 등 걷잡을 수 없이 환자가 늘어나는 현상이 문제가 되었다. 


새로 나타난 병이어서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치료제와 예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전세계가 힘을 합쳐 노력한 결과 1년만에 백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 이전에 가장 빨리 개발한 백신이 힐만(Maurice Hilleman)이 개발한 유행성이하선염 백신으로 4년이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빠른 기간이었다.


이렇게 전보다 짧은 시간에 백신 개발이 가능했던 것은 코로나19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일이 워낙 시급했으므로 일반적인 경우보다 빠르게 임상시험을 시행한 이유도 있지만 이미 백신 개발 경험이 많이 축적되어 있었으므로 연구시설과 연구진행이 개발속도를 전보다 훨씬 빠르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와 비교한 현대의학의 우수성은 의학의 많은 분야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의학 발전이 질병 발전을 야기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위키미디어 제공

라지오넬라 감염병. 위키미디어 제공


● 세상의 발전이 질병의 원인이 되는 예


원시시대에는 교통사고가 없었다. 굳이 있다면 걷다가 넘어져 부상을 입거나 동물을 사냥하기 위한 목적 등으로 뛰어가다가 넘어져 부상을 입는 경우 정도였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던 시대를 지나 동물을 타고 다니는 시대가 되자 교통사고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각자의 힘으로 걷기보다는 동물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더 빨리 더 멀리 이동할 수 있게 되자 동물을 길들여 주어진 시간 내에 더 빨리 달리기 위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피해도 더 커지기 시작했다.


동물을 이용하는 시대를 거쳐 산업혁명에 의해 근대화가 진행되자 이동을 위한 수많은 기계가 개발되었다. 자전거, 자동차, 비행기, 배와 같이 크기가 커질수록 한 번의 사고에 의한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세상의 발전이 사람에게 새로운 질병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1976년 8월 8일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벨레뷰-스트래트포드(Bellevue-Stratford) 호텔에서 재향 군인들의 모임이 열렸을 때 약 2000명이 참석하여 221명이 감염되고 34명이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무슨 병인지 몰라서 재향군인병이라 한 이 감염병은 1977년 1월 18일에 레지오넬라균에 의한 감염병임이 최초로 알려졌다. 


더위를 식히는 에어컨(냉방기)의 발견이 레지오넬라 감염증을 유발한 것이다. 에어컨은 냉각수를 이용하므로 냉각수에서 레지오넬라균이 증식하여 비말 형태로 사람으로 전파되어 감염증을 일으킨다. 여름이 더워지고 길어질수록 더위를 이겨내기 어렵다 보니 에어컨을 사용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환자발생도 늘어났다. 


지금은 아지스로마이신이나 레보플록사신과 같은 약으로 레지오넬라균 감염에 의한 레지오넬라증 치료가 가능하다. 그래도 한 번에 다수의 환자가 발생하곤 하면서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2001년 7월에 스페인에서는 약 1만6000명이 이 세균에 노출되어 확진된 환자 449명중 6명이 세상을 떠나는 등 냉방기구를 많이 사용하는 잘 사는 나라에서 수시로 환자가 발생하곤 하며, 치명률은 1~10%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에 레지오넬라증이 제3급 법정전염병으로 지정되었다. 3급 전염병은 1급 전염병만큼 빠르게 전파되고 파급효과가 크지는 않지만, 반복하여 유행할 가능성이 있어서 지속적으로 감시를 하고 유행할 경우에 방역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 병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보통 수십 명의 레지오넬라증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기저 질환이 있는 경우는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에어컨만 없다면 환자 발생이 크게 줄어들 수 있을 텐데 에이컨 사용으로 인해 병이 생겨난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X선은 또다른 질병을 발생시켰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의학 발전에 의한 질병 발생의 예


약을 사용하면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의학적으로 유용한 약도 질병 발생의 원인이 된다. 백신도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있고 수술도 잘못하면 병을 고치려다 더 심각한 부작용을 얻는 경우가 생긴다. 또한 병을 고치기 위해 입원했다가 병원에서 병을 얻는 경우도 있으니 병원내 감염이 이에 해당한다.


의학이 발전할수록 질병 발생이 증가하는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며 여기에서는 X선의 효과와 그로 인한 질병을 소개하고자 한다.


1901년에 첫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뢴트겐(Wilhelm Conrad von Roentgen)은 1895년에 X선을 발견했다. 암실에서 그 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빛 뒤에 손을 넣자 손 뼈의 모양이 나타났으므로 손 내부를 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X선에 대한 연구를 지속한 그는 1897년에 X선에 대한 자신의 연구결과를 담은 책을 발표했고 다이너마이트를 발견하여 큰 돈을 번 노벨(Alfred Nobel)의 유언에 의해 제정된 노벨상의 첫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뢴트겐이 발견한 X선은 신비스럽게 손을 뚫고 나와 유리판에 뼈의 모양만 선명하게 비춰 주었다. 또 인체 내부를 볼 수 있는 용도 외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음이 알려졌지만 인체에 미치는 부작용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X선을 이용하여 어떻게 사진을 찍는지 시범을 보이던 사람들은 하루에 두세시간 정도 X선을 노출시키는 경우 얼마 지나지 않아 피부가 건조해지고, 햇빛에 의해 화상을 입은 것과 비슷하게 피부에 화상 증상이 발생했으며 손톱이 자라지 않거나 머리카락, 눈썹, 속눈썹이 모두 빠지는 경험을 했다.


미국 최고의 발명가로 유명한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의 조수 한 명은 자신의 몸에 직접 X선에 노출시키는 실험을 하다 39세에 부작용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량 노출은 부작용이 없음이 판명되었으므로 X선 사용범위는 점점 넓어졌다.


X선 발견은 의학에서 방사선과라는 전문분야를 탄생하게 했고 그로부터 진단방사선과, 치료방사선과, 핵의학과로 분화되어 현재는 전문의사로 인정받기 위해 세 분야에서 별도의 시험을 치러야 한다. 


진단방사선과에서는 사진을 이용하여 주로 인체 조직이나 기관의 변화를 일으키는 질병을 진단하지만 간암에서 혈관을 막는 치료룰 하는 것과 같이 영상으로 인체 내부를 들여다보며 약물을 주입하는 질병 치료에도 일정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오늘날에는 영상의학과로 이름을 바꾸었다.


또 치료방사선과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을 인체에 필요없는 종양세포에 집중시켜 그 세포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치료를 하므로 현재는 방사선종양학과라 한다. 참고로 종양세포의 성질에 따라 악성종양과 양성종양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예후가 더 안 좋은 세포를 지닌 악성종양을 암, 예후가 상대적으로 좋은 세포를 지닌 양성종양을 혹이라고도 한다.


요즘은 몸에 원인모를 통증이 발생하거나 어딘가를 부딪힌 다음 병원에 가는 경우 “사진부터 찍어 이상이 있는지 확인해 봅시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일이 일상적일 정도로 X선으로부터 출발한 영상술이 의학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는 턱과 이의 사진을 이용하여 누구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영상술이 발전했지만 위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인체를 X선에 반복 노출시키면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암세포를 죽이는 건 좋은 일이지만 정상세포도 함께 파괴되므로 영상의학과에서 사진찍는 일을 담당하는 분들은 납으로 만든 가운을 입어 X선이 인체로 침투하지 못하게 한다.


X선 연구에 큰 역할을 하여 각각 노벨상을 수상한 퀴리 부인(Marie Curie, Maria Salomea Sklodowska)과 그 딸(Irene Joliot Curie)은 X선에서 나오는 방사능 연구에 한평생을 바치며 학문 발전에 큰 공헌을 했지만 부작용이 덜 알려져 있던 시기에 방사선 과다노출에 의한 부작용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X선 발견에 의해 의학이 한층 업그레이드되었으나 그로 인한 부작용이 목숨을 좌우할 정도로 심각한 병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과거에는 피해자가 많았고, 지금도 주의가 필요한 상태다. 

 

위키피디아 제공

히포크라테스 동상. 위키피디아 제공


● 세상에 공짜는 없고, 무엇이든 댓가가 필요하다


'논어', '맹자', '대학'과 더불어 유교에서 사서의 하나인 '중용'은 극단을 선택하지 말고 중간의 도를 택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필자는 이런 유학 사상이 의학에서도 흔히 통용된다는 생각을 수시로 가지곤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활약한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사람의 몸 내부 또는 내부와 외부의 조화를 강조했다. 이러한 사상은 근대 이후까지도 전해졌고 현대의학에서도 영양소를 섭취할 때 부족하며 영양실조로 다양한 질병의 원인이 되지만 과다하여 비만이 발생하면 고혈압, 고지혈증, 대사증후군, 당뇨병 등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된다. 영양소도 적절히 섭취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것과 같이 의학 발전은 사람의 질병과 건강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주고 있지만 항상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고 그로 인해 다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오묘하고 신비한 사람의 몸을 다룰 때는 눈앞에 보이는 문제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항상 넓은 눈으로 사람몸은 물론 그 사람이 속해 있는 환경과 그 환경속에서의 역할까지 총체적으로 파악해야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0 0